향으로 피어난 ‘매화와 연꽃’ 자수…향수 런칭
AI 시대, 전통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다

이경숙 수박물관 관장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이 불기 이전 부터 지역 아동들을 대상으로 민화에 대해 가르쳐왔다. 그는 ‘케데헌에 나오는 까치의 눈이 3개인 이유는 무엇일까?’ 등 다양한 주제로 민화 강연을 펼칠 계획이라고 했다. 김지혜 기자

“향유하는 문화, 그것이 곧 우리의 힘입니다. 문화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이지요.”
박물관 수의 이경숙(63) 관장은 최근 전 세계를 사로잡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다. 케데헌 속에서 만난 더피(호랑이)와 서씨(까치)를 보고는 더할 나위없이 기쁘고 반가웠다고 했다. 더피와 서씨는 우리 민화 ‘호작도’의 까치 호랑이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캐릭터들로, 대학시절 동양화를 전공한 이 관장은 케데헌 열풍이 일기 훨씬 이전부터 까치 호랑이 등 우리 민화 알리기에 앞장 서 왔다.

이 관장은 “케데헌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까지는 우리 전통문화를 이끌어 온 무수히 많은 전문가, 연구자, 그리고 한 평생을 바친 사람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덕분에 우리 국민들도 ‘우리의 것은 대단하고 굉장하다’는 자각을 하기 시작하며 민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는 지역의 작은 박물관들도 ‘문화의 동행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물관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괴리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소비되지 않으면 그 가치는 이어지지 않아요. 일상 속에서 향유하는 문화로 다가가야 합니다.”

박물관 수는 그 일환으로 최근 자수를 모티브로 한 향수를 만들어냈다. 단순 상품 개발을 넘어 전통문화 대중화를 위해 마중물을 긷는다는 차원에서였다.

◆향으로 피어난 ‘매화와 연꽃’ 자수




조선 여인의 향기로운 비밀로 펀딩 중인 텀블벅 홈페이지 캡처.



‘연화청심 · 매화정의’ 멀티퍼퓸 프로젝트 ‘조선여인의 향기로운 비밀’ 시리즈로, 텀블벅에 소개된 향수 이미지 캡처.

“매화와 연꽃 자수 문양을 향기와 결합해, 유물이 일상 속에서 향기로 남을 수 있도록 했어요. 향기를 통해 박물관에 오지 않아도 우리 자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떠올리고 느끼길 바랍니다. 우리 문화를 사랑하다 보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도 자연히 커질 테지요. 머지않아 제2의 케데헌이 또 나올 것이고요.”

이경숙 관장은 오랜 기간 연구와 허가 절차를 거쳐 지난 12일 ‘연화청심 · 매화정의’ 멀티퍼퓸 프로젝트 ‘조선여인의 향기로운 비밀’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소셜 크라우드 플랫폼 ‘텀블벅’을 통해 선보였다. 오는 11월12일까지 500만 원을 목표액으로 펀딩이 진행 중이며 30일 기준 370만 원이 모아졌고 후원자만 90명에 달한다.

이 관장은 “매화와 연꽃을 모티브로 했다. 매화는 퇴계 이황 선생의 정신처럼 매서우면서도 굴하지 않는 기상을, 세계 문화의 중심에 있는 연꽃은 탁함 속에서도 맑음을 잃지 않는 청정한 정신을 담고 있어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향수 병에는 박물관 수의 실제 소장 유물 속 우리 자수를 추출, 그래픽으로 재해석해 새겨넣었다. 향수를 뿌릴 때마다 자수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먼저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관장은 박물관을 ‘기억의 공유체’라고 정의했다.

“박물관은 과거를 보존하는 공간이 아니라 현재형의 매개체여야 합니다. 자수를 향수로 만든 것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그것이 바로 박물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죠.”

◆AI 시대, 전통문화의 새로운 가능성

이 관장은 ‘AI와 전통문화의 융합’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음달부터는 AI를 활용한 그림책 작가 양성 과정을 위해 작가 모집에 나선다. 인문학적 철학과 전통문화를 엮어낸 AI 그림책을 제작하는 작가를 배출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AI 시대에는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것을 넘어, 그것을 통해 문화를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전통문화를 철학적, 인문학적으로 해석하고 AI로 시각화하는 역량을 키우는 과정이다. 다음 세대가 문화 소비자이자 창조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박물관 수는 이미 AI를 활용한 교육 실험을 진행 중이다. 지난 9월 바느질 교육을 바탕으로 한 AI 인형극 영상을 만들어 냈다.

전통문화 대중화를 위해 그는 민화 교육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박물관 수는 지역 아동센터와 함께 전통문화 수업을 매주 진행 중이며, 문화예술진흥원과 한국박물관협회 등의 다양한 공모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민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마음을 담은 언어입니다. 어린이와 어르신 모두에게 전통문화를 교육하는 것은 그 마음을 잇는 일이지요.”

이 관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어린이 민화 공모전’을 개최해 민화의 대중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온라인 ‘민화학교’에서 어린이 민화 교수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문화 소외계층을 비롯 다음 세대인 아이들을 위한 전통문화 교육이야말로 꼭 필요한 일”이라며 “돌봄교사와 교육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전통문화 교수법 인증제도가 도입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대구시교육청 등과 연계해 교육 품질 인증제를 제도적으로 도입하면 전국적인 확산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이경숙 관장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거대한 원석’이라고 표현하며 문화의 보편성과 지속가능성을 제도적으로 묶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통문화라는 원석을 다듬고 빛나게 하는 건 바로 사람입니다. 문화적 자긍심이 국민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는데 그 힘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 문화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경숙 관장의 저서 『검은 머리 풀어 수를 놓다』, 『근대의 십자수』, 『어린이민화교수법』, 『베갯모 꽃 수』. 박물관 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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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일보 https://www.idaegu.com/news/articleView.html?idxno=6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