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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이야기 [실과바늘이야기]색동```색동옷 차려입은 날은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축제의 날
작성자 museumsoo

[이경숙의 실과 바늘 이야기] 색동…색동옷 차려입은 날은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축제의 날

  •  발행일 2021-03-19 제38면


 

  • 결혼·종부의 길사·해로 60년맞이 회혼례
    여성이 세번 입는 색동띠 두른 원삼·활옷
    아이나 어른이나 기쁘고 특별한 날 기념
    색채 기운, 안정·변화·動이 조화된 세계
    소리·움직임 담아낸 이날치 밴드 '색동'
    색과 색의 간극, 변화·창조적인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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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4대 종손 길사시에 15대 종부가 절을 올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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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키스 'Young Korea'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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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동을 두른 매화꽃 자수.
거리의 불빛이 아스라이 흐려지는 늦은 밤, 모든 색은 검은 동굴로 숨어든다. 겨우 별빛과 달빛을 의지해서 그 틈을 조금 보여줄 뿐이다.

가끔 너무 바쁜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을 때 어떤 풍경을 떠올린다. 모래바람 가득한 사막의 끝에서 만난 투루판의 교하고성(交河古城)의 풍경이다. 황토바람과 잿빛의 길이 있는 단색의 고성에 서 있는 느낌은 모든 소리가 사라진 진공의 상태와 같았다. 시각이 청각에 영향을 준 때문이다.

침묵의 색이 이방인의 심장에 천년의 무게로 내려앉았다. 그때 문득 한 소녀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 소녀는 공작깃털처럼 직조한 색동 원피스를 온몸에 감고 있었다. 갑자기 두 눈이 반짝였다. 눈의 허기를 채워준 그 색들 덕분에 교하고성의 풍경은 다시 사람의 세계로 감각을 회복시켜주는 듯했다. 이렇게 우리는 생명이 있는 한 색을 열망한다.

우리나라에는 '색동'이라고 부르는 독특한 색의 구성이 있다. 이러한 '색동'은 2006년 문화관광부가 '100대 민족문화상징'으로 선정했다. 사전적 의미는 '여러 색의 옷감을 잇대거나 여러 색으로 염색하여 만든, 아이들의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소맷감'이라고 돼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주로 보아온 색동은 이미 직조된 색동단이다. '색동 비단요'는 늘 장롱의 제일 높은 곳에 원앙 수놓은 붉은 공단 이불과 함께 잘 개어져 있었다. 물론 색동과 같이 다양한 색의 층위를 연속적으로 배열해서 사용하는 방식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고구려 고분 벽화뿐 아니라 동시대의 일본 다카마츠 고분(高松塚) 벽화나 중국의 아스타나 고분 벽화에서도 나타나고 있기에 고대로부터 널리 유행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베트남, 대만, 몽골족이나 라후족 등 중국의 소수민족 30여 개에 이르는 나라의 패브릭(fabric)에 그 보편성이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색동에는 우리만의 가치와 철학이 녹아 있다.

색동옷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옛날에 노래자(老萊子, 老子)가 70세의 나이에도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반의(斑衣) 즉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었다는 중국 진(晉)나라 때 '고사전(高士傳)'에 수록된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가정(稼亭) 이곡(李穀)이 지은 시에 '고당에서 색동옷 입고 춤을 추면서(高堂舞綵衣)'라는 구절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도 색동옷의 전통이 계승돼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때때옷을 입은 선비'로 유명한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1567~1555)는 시호가 효절(孝節)인데, 당시에 이름난 효자였다. 그 역시 부모님을 위해 자신이 이미 노인이었음에도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어서 즐겁게 해드렸다는 미담이 전한다.

색동옷을 입는 경우는 이처럼 축제와 같은 기쁜 일에 이를 더욱 즐겁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어린이의 색동옷뿐 아니라 성인 여성에게도 색동옷을 입는 경우는 대략 세 번쯤 된다. 결혼과 종가의 종부가 된 경우 길사 때, 남편과 해로(偕老)해 결혼 60주년이 되면 회혼례(回婚禮)를 맞이할 때 등이다. 그때마다 색동띠를 두른 원삼이나 활옷을 다시 꺼내 입었다. 부모의 삼년상을 마친 뒤 마지막으로 지내는 제사가 '길사(吉祀)'인데 이때 종부가 색동과 수(繡)로 장식된 원삼(圓衫)을 다시 입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게 된다.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beth Keith·1887~1956)는 1919년 한국에 와서 유난히 색동옷 입은 아이들을 많이 그렸다. 아름다운 한국의 색동에 매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색동은 자수문양과 민화에서도 다양한 색띠로 등장한다. 우리는 평소에 전통의 색동에 대해서 특별한 미적 체험의 기회가 적었다. 그래서 교사연수 시간에 색동천을 가지고 텍스타일 아트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수업에 참여한 선생님의 말씀이 인상 깊었다. "막상 수업을 하고 보니 색동이 정말 예쁘게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마침 출근길에 비가 내렸는데 색동요가 의류 수거함 위에 있는데 그 천을 가지고 와야지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남들이 이상하게 볼까 싶어서 그냥 왔어요."

비를 맞으며 버려진 색동이불의 처연함과 선생님의 표정이 떠올라서 우리는 모두 한참 웃었다. 평소 같으면 관심 없이 지나쳤을 터인데 그렇게 달라진 마음에 모두 놀랐던 것이다. 선생님은 그 경험으로 인성교육 시간에 색동 이야기를 들려주며 색동천을 가지고 활동하는 수업을 하셨다고 했다. 이처럼 작지만 소박한 실천 경험들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서로를 껴안고 이해하는 날실과 씨실의 역할을 해 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색동옷을 입은 '이날치 밴드'가 젊은이들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저렇게 색동을 입을 수 있을까 하는 충격이 없지 않았으나 이제는 그 매력에 푹 빠져드는 분위기다.

우리 민족의 색은 학처럼 고고하고 구름처럼 소박한 흰빛의 일상을 즐겼고 때로는 때때옷 입고 춤을 추는 흥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 두 줄이 한 가닥으로 꼬이는 새끼줄처럼 작동해 우리를 지탱해 주고 있다. 두 개의 내재율인 셈이다. 다른 나라의 색동이 색상끼리의 색 면적을 다르게 하여 변화와 율동감을 주는데 비해 우리의 색동은 등가의 색면을 지니고 있다. 왜 그럴까?

그 색의 배색에 있어서 동서남북의 모든 기운과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담아내는 색채로써 의미를 지녔다면 당연히 등가의 형식을 지닐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색상 간의 배열의 규칙적인 반복성이 가지는 안정감과 채도가 높은 순색을 등 간격으로 배치함으로써 경쾌하고 선명하며 명랑한 정서를 자아낸다. 그뿐만 아니라 빨강과 파랑과 노랑으로 건너가는 그 사이에 무한한 울림이 창조적 확장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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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치 밴드와 만난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이날치 밴드'는 이러한 색동의 의미를 소리와 움직임으로 잘 담아내었다. 리듬에서는 색동띠처럼 몇 개의 악기만으로 단순하게 반복되는 음가를 유지했고, 그들의 의상에서는 '무의도(無意圖)'의 의도를 느끼게 한다. 노래하는 사람들의 각각의 개성이 의상에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말대로 춤도 무용도 아니라고 평가받는 몸짓은 신체의 무의식적인 언어 그 자체이기 때문에 많은 이에게 깊은 정서적 공감을 주고 있다. 익숙한 것들의 낯선 조합이 새롭고 현대적이며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이 현상이 놀랍다. 우리의 색동이 가진 인문학적인 철학과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색동을 무채색으로 찍으면 질서정연한 공간과 면만 드러난다. 그 위에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 색들이 입혀질 때 변화와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생명력이 색과 색의 간극에서 무한히 팽창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색은 충돌하는 색일수록 강렬한 에너지를 가진다. 한국의 색동은 안정과 변화, 정(靜)과 동(動)이 조화된 세계다. 색동이 지향하는 등가의 면적은 기회의 공정성과 정직함을 내포한다. 각각의 색채는 모든 사람이 삶의 주체이며 또한 천지와 동서남북의 모든 기운이 우리에게 가득해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평화로운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색동옷 입은 '이날치 밴드'의 노래를 들으며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축제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박물관 수 관장